저자는 제러미 벤담에 의해 설계된 펜옵티콘에 대해 설명한다.
벤담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창하며,
범죄자들의 갱생을 최대화하기 위해 감옥 모형, 판옵티콘을 디자인했다.
벤담은 아마 교도관의 철저한 감시가 수감자를 교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펜옵티콘은 수감자가 교도관을 볼 수 없지만
교도관은 수감자를 쉽게 한 곳에서 관찰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펜옵티콘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는 감시받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이런 무형의 압박은 현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으며,
국가의 법률과 규칙, 도덕과 윤리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현대에도, 중국이나 북한 등 사상의 자유를 적극 감시하고 검열하는 국가들은
물리적인 감시체계 뿐만 아니라,
당근책으로 공권력에 신고를 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지배 형태로 볼 수 있다.
중국이나 북한 등의 사상적으로 폐쇄된 국가에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자유주의 국가에서도 오늘날 발달된 미디어가 이런 형식의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
미디어에서 특정 관점에 편향되어 보여주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를 통해, 개인은 대중의 여론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되며,
개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 위축되게 된다.
경영의 세계에서도 펜옵티콘은 적용된다.
단순히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조직이나 조직원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다.
조직장의 자리는 흔히 조직원들이 훤히 보이는 자리에 위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원은 사무공간에서 이야기를 회피하며,
조직장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적극적으로 이동한다.
조직장이 있는 공간은 조직원의 커뮤니케이션 일어나는 공간과 반대가 된다.
조직장 주변에 특정인의 입술이 많은 경우 더욱 문제가 심각해진다.
조직원들은 언제 자신의 언행이 어떻게 전달될지를 걱정한다.
이는 잔뜩 위축된 행동과 발언의 절제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낙인이 찍히지 않기 위해, 이미 검증된 안전한 선택만을 하게 되며,
규범적 사고와 행동만 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감시받는 듯한 압력은 혁신적 결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든다.
최근의 한국정치의 행태가 대표적인 예로 들만하다.
오늘날 행정부가 노동개혁 및 연금개혁을 과감히 실행하지 못하고,
정당 정치에 의해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이유 중 하나가 여론과 언론에 의한 압력 때문이다.
심지어 의대 증원 같은 필수불가결한 이슈도 이렇다할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혁신은 커녕 정당성과 합법성이 충분한 움직임조차 쉬이 취하지 못하는 늪에 빠져버렸다.
어떤 경우에는 조직이 펜옵티콘에 의해 움츠러들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때가 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평평한 지구에 사는 경우가 그렇다.
다수의 믿음, 다수의 행동을 답습하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조직원은 파라노이아형 인간으로 전락한다.
나치에 반대할지 가입할지 선택하지 않았던
일반 독일시민들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조직에 속하는 것만으로 조직원들은 선택하지 않음의 위기 상태에 빠진다.
어딘가에 속함을 이유로, 조직원들은 자연스럽게 바깥의 세계에 대한 관심과 시야를 접는다.
그렇게 조직은 변화와는 멀어지며,
어느새 외부 세계가 조직을 빠르게 제치는 때에, 극복할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하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펜옵티콘 효과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고 시인한다.
대신, 조직의 과제와 방향성에 맞게 이 효과를 잘 제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은 스키조프레니아보다는 파라노이아형으로 점점 취약해지며,
반취약성을 상실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나는 어떻게 리더로서 펜옵티콘을 적용할 것인가?
조직장은 조직원 모두에게 발언 기회가 열려 있음을 증명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모두가 조직장과 동등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특정 조직원의 입술을 통한, 압박의 분위기 조성을 회피할 수 있다.
조직원이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과 언제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한다.
대화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대화가 통한다는 감정을 조직원에게 남기고,
대화를 통한 성공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있다.
만약, 특정 조직원의 대화 결과를 통해 조직 또는 조직장이 변화하는 것을 보았는데,
나라는 조직원과의 대화 이후 변화하는 것이 없다면,
조직원은 이를 실패 경험으로 인식할 것이며 좌절할 것이다.
크던 작던 대화의 끝이 조직원의 커뮤니케이션 성공 경험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조직원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확보하려면
조직원을 우선 판옵티콘으로부터 탈옥시켜야 했다.
DELTA 조직원 중에 혹자는 다른 선배가 DELTA에 있다면,
이토록 자유롭게 발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그 조직원의 언행이 이미 선배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는 것이고
업무적 또는 평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스스로 염려하는 것이다.
이처럼, DELTA를 물리적으로 구조적으로 분리한 이유는
모든 물리적, 비물리적 펜옵티콘에서 조직원들을 해방시키고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창의성을 환원시키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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