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노이아와 스케조프레니아, 두 단어는
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의 공저인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언급되는 용어라고 한다.
본디, 파라노이아는 편집증, 스키조프레니아는 분열증을 의미하는데,
안티 오디푸스에서는, 인간의 아이덴티티를 구분하는데 위 용어 두 개가 사용된다.
파라노이아형 인간은 정해진 아이덴티티를 따르는 사람들로,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은 정해진 아이덴티티를 따르지 않고 계속 변화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들뢰즈는 트리와 리좀의 대비 구조를 통해 이야기 한 바가 있다고 한다.
트리는 하나의 원류에서 가지가 뻗어나가는 모양을 가진다.
반면, 리좀은 출발점을 정의내리기 어려운 모양으로,
뿌리줄기식물이나, 버섯같은 균류의 군집처럼 무질서한 복잡한 릴레이션을 갖는다.
트리와 리좀의 비교는 구조, 조직, 개인 어려 방면에서 적용해볼 수 있다.
저자는 트리-리좀 관계를 파라노이아-스키조프레니아 관계에 비유하여 설명하려는 시도를 한다.
수직적 구조하에서 생존을 영위하는 파라노이야형 인간들은
원류에 해당하는 게 트리 기둥이 끊어지면 그대로 그들의 취약성을 노출시킬 수 밖에 없다.
반면, 수평적이며 자유로운 생존을 지향하는 스키조레니아형 인간들은,
어떤 줄기가 끊어져도 다른 곳에서 생존의 가능성을 빠르게 도모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아사다 아키라의 도주론이라는 책을 계기로,
표제의 두 용어가 한 때 일본사회에서 매우 유행했다고 한다.
당대 일본의 잃어버린 xx년의 암울한 시기 속에, 사회에 대한 통찰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도주론에서 아사다 아키라의 설명에 따르면,
파라노이아형 인간은 정주하는 특성을 갖기 때문에, 변화와 변혁에 약한 것으로 묘사한다고 한다.
반면, 스키조프레니아 형 인간은 도주형의 인간으로, 외부 변화에 빠르게 모습을 바꿔
생존이 가능한 인간이로써 서술된다고 한다.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을 도주형으로 묘사했기에,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의 문제일지 모르겠다. 내가 원문을 읽은 것은 아니니까)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의 생리를 직감적으로 변화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이건 역마의 개념과 비슷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단편 소설 역마에는 인간의 선택에 대한 내적 고뇌가 잘 그려진다.
이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등 뒤로 한 채 움직인다는 건
개인으로써는 큰 고민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변화가 극심한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무엇을 목표로 두어야 할까?
저자와 아사다 아키라는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적극적으로 바꾸는
용기있는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이 될 것을 장려한다.
한국사회는 한국의 노동시장을 전부 파라노이아형으로 만드는 데 목표가 있어 보인다.
머리로는 이런 유형의 주장과 움직임을 이해한다.
오늘날 건설,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제조업 근간을 이루는 산업들은
가장으로써 사회구성원으로써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에 의거하여 구성되었다.
가령, 조직은 조직원에게 게마인샤프트에서 발휘할 가치를 조직에 쏟기를 강요하였다.
낮은 안전의식, 열악한 근무환경, 장시간의 근무시간, 인간성의 배제 등의 부조리를 감수하고
조직이 원하는 성과를 도달하고자 몰아붙인 시기가 그것이다.
반대로, 조직이 조직원에게 게마인샤프트의 가치를 향유하게 하였는가는 의문이다.
한국 산업의 유래 없는 발전의 속도에 의해,
노동자들은 과거의 희생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며,
누적된 역사를 상기하며 받지 못한 가치적 보상을 요구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 산업이 발전하는 동안, 선진국의 산업도 패러다임 변했다는 점이다.
전통성 있는 해외 자동차회사들은 볼 것도 없다.
노동을 재편하는 일은 판매량이 후퇴한 회사들만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최근, 글로벌 판매량 2위의 폭스바겐까지 구매-생산 일반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즈니스가 휘청이는 와중에도,
닛산은 21년 스마트 팩토리에 대한 투자와 전개에는 거침이 없었다.
테슬라의 노동자 제로화에 대한 움직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자동차가 이럴진데, 다른 변화가 제조업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조선이나 건설 등 사람의 원초적 맨 파워가 필수적인 곳을 제외하면 말이다.
한국 제조업 특히 대기업은 파라노이아형 인간의 양성소가 되었다.
오늘날 산업의 안정기에 들어, 대부분이 정년퇴직을 맞이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가면, 내가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부품이라는 걸 알게된다'라는
말을 대학 때 들었었는데, 그 삼성전자조차 평균 근속연수가 49세까지 올라갔다.
파라노이아형 조직 및 인간의 좋은 점도 물론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조직의 가치관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전달한다.
이들은 조직의 강건성을 담당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조화와 조합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한국 조직의 내부는 정주형 위주인데 반해,
한국 조직이 맞딱드리고 있는 외부는 계속 진화중이다.
과연 격변하는 이 시대에, 한국 조직이 과연 안티프래질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안티프래질하게 탈바꿈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의문이다.
삼성전자는 15년 HBM을 처음 상용화시켰지만,
경영 판단 미스로 현재는 HBM 수주에 실패하고 있으며
과거의 삼성전자 HBM팀은 하이닉스에서 맹활약중이다.
능력 이전에, 경영진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충분한 혜안과 지식을 함양하고 있느냐는
그 어느때보다 치명적인 결과로 다가오는 시대이다.
나는 리더로써 어떻게 파라노이아와 스키조프레니아를 적용할 것인가?
파라노이아형 인간에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전통적 가치관과 역사관을 지키는 일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직의 대다수가 파라노이아형 인간으로 구상되어,
조직 전체가 파라노이아의 특성을 갖는다면, 그 때부터는 문제가 된다.
조직의 비즈니스가 정주하는 특성을 갖게 될 것이고,
외부의 좋은 사례 또는 제품을 배척할 것이다.
비즈니스가 이런 식으로 발전하게 되면, 조직에서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은 살아남기 어렵다.
'어차피 회사는 바뀌는 게 없어'라는 식의 일반의지가 팽배해지면,
인간은 평범함을 뒤쫓게 되어 있다. 나치독일의 일반시민들처럼 말이다.
이것이, 짐 켈러가 특정 회사에 정주하지 않는 이유일 지도 모른다.
DELTA의 당초 목표 중 하나는,
스키조프레니아가 될 수 있는 매니저들을 보호하고,
파라노이아가 되기 전에, 스키조프레니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굴하는 데에 있다.
오늘날, 세번째 IT 혁명을 논하는 시대임에도
회사도, 팀도, 직원도 반응이 너무 느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미뤄둔 숙제가 너무 많아보인다.
반면, 혹자의 '지금까지 안해왔는데도 문제 없었어' 말에서 보이듯이,
간단한 변화와 적용조차 정적인 파라노이아형 사회에서는 쉽지 않다
따라서, 다수의 관념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나는 '지금까지 안해왔는데도 문제 없었어' 말에서
'온도에 둔감한 개구리 실험'을 떠올리곤 하는데,
나 혹은 내 옆의 동료가 삶아져 죽는 미래를 보지 않으려면,
물에서 나오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DELTA에서 추구하는 바이다.
한편으로, 나 자신의 생존을 위함도 DELTA를 하는 이유다.
따라서 파라노이아형 인간들로부터 나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키조프레니아의 액티비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용기와 역량을 준비해야 한다
용기는 근거로부터 나온다.
근거는 준비로부터 나온다.
오늘날의 준비는 역량이고 지식이며 그것을 타인에게 증명할 수 있는 결과와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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