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철학 박사님이, 철학을 공부할 때
단어의 뜻에 매몰되지 말라는 말을 했었는데, 정말로 그러한 것 같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철학적 용어를 옮겨오는 것인지
모르고 공부한다면 퍽 어려운 일이었겠다 싶다.
마르셀 모스가 얘기하는 증여 역시 사회적으로 정의된 일반적인 증여와 다소 다르다.
예컨데 민사로써 정의되는 증여란,
대가 없이 어떤 효용성 있는 자산을 타인에게 주는 것을 말한다.
반면, 모스의 '증여'란 폴리네시아인들의 특별한 행동을 정의하는 데 사용된다.
서론의 불평과 달리, 이들의 행동 양상은 매우 독특하여
익히 알려진 단어로 묘사하기 참 어려움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의 '증여'의 독특한 점은, '의무'가 부여된다는 점이다.
마르셀 모스에 따르면 폴리네시아인들은 아래 3가지의 의무를 반드시 지킨다고 한다.
1. 증여할 의무 : 주지 않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
2. 받을 의무 : 오히려 폐가 될지라도 수여를 거절하면 안 됨
3. 답례 의무 : 반드시 증여에 대한 답례해야 함
저자에 따르면, 이 의무의 정도가 매우 심하여,
먼거리의 선상 이동으로 죽을 위험이 확실시 되더라도
기꺼이 답례를 하러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스는 증여를 통해, 거래라는 행위를 되짚어본다.
역사적으로 고대 문명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거래라는 행위는
노동이던 효옹이던 가치 평가 그리고 상호 비교에 의해 이뤄져왔다.
즉, 거래라는 행위는 이성적이며, 탐욕스럽고, 어떤 경우 폭력적인 행위에 가깝다.
특히 인류는 중세 이전부터, 가치 평가를 할 수 있는 정보의 독점
또는 가치 비교를 불가하게 정보를 왜곡하는 것으로부터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은 국가들이 속속 나타나곤 했다.
이들은, 유라시아의 중앙에 위치하여, 유럽과 동아시아의
금은 환율차이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기적으로 숨겨왔으며,
달콤한 환차익을 길을 터주는 대가로 쌓을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고의를 갖고 정보를 불균일하게 만들어,
재화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왜곡하고, 특정 소수가 차익을 편취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즉, 모스는 인간 사회의 거래란 인간성을 상실케 하는 행위인데,
폴리네시아인들의 거래란 집단의 인간성을 유지케하는 동력이란 점이다.
저자는 모스의 관점으로 조직과 직원의 관계를 조망해본다.
조직과 직원은 급여와 노동을 '거래'하는 계약 관계 만나게 된다.
조직은, 직원의 노동 대비 적은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직원은, 급여 대비 적은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필연적 목표가 된다.
즉, 조직과 직원이 오직 거래로만 유지되는 관계라면,
이 관계는 서로 대결 관계가 된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조직원은 거래 상 이점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에
리더그룹과 감정적 교류의 방벽을 만든다.
그리고 상기 일련의 과정은 조직-직원 관계를 계산적인 관계로 전락시키는 데 기여한다.
가령, 회사는 직원을 닦달하고, 직원은 회사를 비난하는 일이 전형적이어진다는 것이다.
대개, 조직원은 조직원을 괴롭히는 전형적인 리더가
뽑기게임처럼 운이 나쁜 일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저자는 직원의 노동을 거래 대가로 보는 조직에서는
이러한 일들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조직원을 괴롭히는 나쁜 리더가 근원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직원-조직 관계를 해소해야한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이 점을 어떻게 해소해야하는가?
저자는 회사가 직원의 노동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직원의 가치를 구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굉장히 축약해서 이 부분을 작성했기에, 나의 사견을 좀 더 보탠다.
가령, 이는 직원을 정량적 평가가 아닌 정성적 평가를 하는데서 시작한다.
첫번째, 거래 대가인 노동 외적으로 직원의 다른 조직기여 항목을 평가한다면,
구조적인 악순환에서 일부 탈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팀케미스트리를 만들거나, 지식의 전달자 역할을 하는 등의
조직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드는 행동에도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두번째, 등급 기반 직급 기반 룰베이스 평가제에서 벗어나
휴리스틱하게 직원을 평가하는 것이다.
고도한 지식과 기술을 가졌다고 해서, 꼭 높은 대가를 받을만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런 지식과 기술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낮은 대가를 받는 것도 불합리하다.
한국 대학 중 가장 센스있는 로고는 아마 한양대학교 로고일 것이다.
한양이라는 글씨와 상징동물 사자가 잘 결합된 이 로고는
한양대학교가 전문업체와의 거래로 제작한 것이 아니다.
외려 돈을 내고 다니는 재학생이 만든 것이다.
한국기업은 외부 임원에게만 관대한 대가 체계를 허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외부 임원의 가치가 희소한 것도 있겠지만,
거꾸로보면, 그만큼 한국 조직이 직원의 가치를 보려 노력하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번째, TO에 기반한 인사관리를 배제한다.
정량적인 TO의 숫자를 채우는 것보다,
그 팀에 얼마만큼의 창의성과 자발성, 헌신이 충만한지를 확인하여 보충한다.
TO에 미달한 숫자로도 놀라운 퍼포먼스를 낼 수 있고,
오히려 많은 팀원이 팀의 모래주머니로 작용할 수도 있다.
특히, 팀의 TO가 비교평가를 통한 급여 체계와도 연동된다면,
이는 조직과 직원의 거래관계를 강화시키는 약점이 될 것이다.
네번째, 성과급을 폐지한다.
이는 앞의 예고된 대가 이론과도 상통한다.
대가가 정해지면, 직원은 그 대가에 맞는 노동만 지급하고자 할것이다,
조직은 대가에 맞는 아웃풋을 뽑으려고 노력할 것이며,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부정적인 평가를 거침없이 가할 것이다.
나는 리더로써 어떻게 증여를 적용할 것인가?
애초에, 거래의 논리론만 작동하는
현 조직에서, 기대할 수 없는 무형적 가치를 쟁취하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DELTA 자체가 어떻게 보면 모스의 증여 관계를 만드려는 일인 셈이다.
따라서 나의 목표란 DELTA의 리더로써 조직원들을
폴리네시아의 증여 생태계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첫째, DELTA에 공급이 필요한 가치를 생각하고
DELTA 조직원을 그 가치로써 평가하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의 경우는 정말 수행하기 어렵다.
외부에서 가치 수혈이 제한되어 있어서, 내부적으로 그 가치를 양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몇달간 굉장한 고민이 드는 주제이긴 하다.
둘째, TO는 오로지 최대 TO만 생각한다.
적은 TO의 장점은 꾸준히 철/어/삶 프로젝트에서 언급했던 것이다.
셋째, 조직원간 우열을 논하지 않으며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각자의 초-전문성을 장려한다.
각자의 초-전문성은, 각자가 노동력이 아닌 스스로 가치로 치환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이는 당초 기대보다 어려운 일로 판명이 났다.
이미 '민사적 거래' 상태에 잠식당한 사람과 분위기에 패배하고
르상티망에 빠진 DELTA 조직원들이 적지 않다는 게 최근 깨달은 일이다.
실패하는 사람은 현재의 추락을 실패로 여기고
성공하는 사람은 현재의 추락을 잠시 지나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데,
나의 증여 행위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싶다.
확실히 어려운 추락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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