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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성장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37. 공정한 세상 가설

by 랜턴K 2024.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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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는다는 보편적 믿음을 갖는다. 

또, 이런 믿음을 전파하려는 노력과 이런 믿음을 실천하려는 노력은

역사적으로, 또 세계적으로 보편적이어 보인다. 

이런 믿음과 또한 믿음의 실천이, 개인과 사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인 걸까? 

이유야 막론하고, 노력하면 보상을 얻는다는 이 개념이

과연 올바르고 정당하기만 한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 이가 있다. 

사회심리학자 멜빈 러너는 이런 믿음이 사실이 아니며, 인지편향임을 지적한다. 

 

멜빈 러너가  공정한 세상 가설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이 가상의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을 갖는다. 

이러한 믿음은 사람들이 세상이 공정하다는 세계관을 형성하게 한다.

따라서, 보상을 원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노력을 투입한다.

보상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노력하지 않는 사람과 동의어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실제 그렇지 않다.

가령, 대표적으로 1만 시간의 법칙은 여러 오해를 낳은 거짓에 가깝다.

성공을 한 사람 중에는 2000시간도 채 안되는 노력을 투입해서 성공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1만 시간 멀티플의 시간을 투입하고도, 결실을 맺지 못하는 사람도 빼곡하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사회통계적 현상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며,

실제로 재능과 지능이 충만하며, 물려받은 사회적 자원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은 시간을 투입하고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명제만이 참이다. 

 

따라서, 공정한 세상 가설은,

냉혹한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자하는 사람들의 인지부조화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가설이 단순히 재능이 부족하고, 사회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현실은 이런거야. 넌 안돼.'라는 식의 냉혹한 일침인 것만은 아니다.

멜빈 러너는 이런 인지적 편향 속에서, 

섣부르게 누적된 시간만을 믿고 노력하는 것은 인생의 낭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가슴 아프지만 반드시 해야되는 조언을 사회에 남긴 셈이다. 

 

또한, 공정한 세상 가설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고 쉽게 결론짓는 문제를 야기한다.

'노력을 하면, 보상을 반드시 얻는다'의 대우 명제가 

'보상을 얻지 못한 것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즉 반대 추정의 문제인데, 노력을 꾸준히 투입하고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생각은 큰 좌절을 안겨줄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세계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노력해서 성공하자'라는 사고의 장력이 풀렸을 때 크나큰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노력하고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다.'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잘못 되었다' 

등의 세계에 대한 분노에 휩싸이는 것이다. 

상대방이 세계이기 때문에, 이는 극단적인 사회적 범죄와 테러로 쉽게 이어지곤 한다.


특히 교육열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사고관이 팽배해 있다. 

이런 사회에서 교육을 받은 한국인 개인들도 그렇다. 

노력할 때 기회를 주고, 노력해서 무언가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원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활용할 생각을 해야 한다. 

조직원이 이런 과정을 거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조직원 간의 공정 경쟁을 만들고

기호에 따라 특정 조직원을 챙기는 순간부터

조직원은 격차에 대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는 조직원간 인간적인 관계 유지에 좋지 않을 뿐더러,

조직원과 조직장 모두 잘못된 착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조직 단위에서, 공정이 필요한 상태 자체를 삭제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겠다 싶다.

 

첫번째는 구조적 원인의 제거다.

비교대상이 없다면, 공정이라는 단어가 정의될 수가 없다.

따라서, 조직 내의 구성원의 역량 또는 역할의 여집합을 최대화한다. 

두번째, 노력해서 보상을 얻는다는 믿음 자체를 조직에서 파기한다.

성과급의 개념을 삭제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일반적인 환경에서 약점이 매우 많은 방식이다. 

사실 이 시리즈를 작성하면서, 항상 비슷한 방식의 결론이 나오는 것 같다. 

가장 최상의 방식은, 역량이 초개인에 가까운 사람을 모이게 하고

그들을 인간적인 유대 관계속에서 묶이게 하며,

그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유도하여 과제를 풀어나가는 것.

이것이 굉장히 어려운 지향점이라는 것을,

특히 노동시장을 한국으로만 국한할 때는 더욱 그렇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공 있다. 

하지만, 궁극적 지향점을 어디에 둘 것이냐에 따라 사람도, 조직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리더로서 어떻게 공정한 세상 가설을 적용할 것인가?

조직이 조직원의 노력을 강제하는 세계관을 갖는다면

가령 조직이 조직원의 노력을 보고 보상을 주는 체계라면,

그것은 조직원에게 불행한 회사생활이 안겨주는 게 된다.

조직 입장에서도 손해다. 

조직원은 최대한의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가령, 목표 100% 달성을 관리하여 보상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관점이 있다. 

목표 100% 달성을 하기 위해서는, 조직원은 안전한 방식, 검증된 방식을 취하게 된다. 

즉, 변화와 혁신이 자발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0에 수렴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Delta를 운영함에 있어서, 

내가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조직원의 자발성과 참여다. 

조직원들이 한국사회에서 학습해온 공정한 세상에서 벗어나는 걸음마를 떼게 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공정한 세상 가설의 다른 문제로

노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람들을 노력의 유무와 양으로 평가하며

그들의 판단을 쉽게 정당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런 류의 판단은, 단연히 조직원간 인간 관계를 왜곡한다.

 

보이지 않는 노력까지 서로 알아챌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더불어 노력 이외의 가치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을 통해 조직원들을 성과나 노력 등의 거짓 인지 편향 정보가 아닌,

조직원 각자의 개인적 가치를 기반으로 인간적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위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이런 관계로, 조직원들을 재조립하는 것이 DELTA에서 또 다른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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