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더십&성장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39. 이데아

by 랜턴K 2024. 6. 17.
반응형

플라톤이 주창한 이데아(Idea)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서양 철학의 오랜 역사를 관통해온 개념이다. 
이데아는 '상상 속의 이상형'을 의미하며, 
모든 개념에 대입될 수 있는 본질적인 형태를 말한다. 
가령, 나무는 서로 다르게 생겼지만 인간은 모두 그것을 나무로 인식하는데,
이는 인간이 나무의 이데아라는 공통된 하나의 지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데아가 존재하는 세계관은, 절대적인 이치와 법칙이 존재하는 세계관으로
이상향을 추구하는 존재로써 인간을 존재하게 한다. 

플라톤은 이데아에 대한 이해를 현실 정치에도 대입하고자 했다. 
즉, 사물과 법칙의 이상향을 이해하는,
이데아를 이해하는 철인이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플라톤은 실제 시라쿠사에서 본인의 철인 정치에 대한 뜻을 펼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적 정쟁에 휘말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결국 시라쿠사에서 도망쳐 나오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상은 이상일 뿐.
현실에서 이상을 구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조직은 조직으로서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다원한 욕망을 가진 개인 다수의 합이기도 하다.
따라서, 조직은 필연적으로 
조직의 이데아와 다수의 개인의 이데아가 한 데 충돌하는 과정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전통적인 조직에서는, 조직의 이데아에 개인의 이데아를 맞추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날 개인의 실존적인 의미가 부각되면서, 갈등의 괴리가 깊어졌다.
특정 산업군 또는 중소기업 등은, 구인이 매우 어려운 반면
반대편에서는 구직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 극심해졌다. 


나는 리더로서 어떻게 이데아를 적용할 것인가? 

나 역시 철인정치로 Delta를 시작했다. 
이상을 쫓기를 강요하진 않았지만, 나 자신은 이상향을 쫓고 있었고,
내심 다른 조직원들도 따라오기를 바랬다. 
Delta는 기본적으로 이상을 쫓는 활동이기에, 나는 현실과 온전한 타협을 하기 원치 않는다. 
그것은 Delta라는 조직 전반에 걸친 나의 아이디어다. 
Delta 조직원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길 원하는 수준.
Delta에서 조직원들이 소통하는 방식.
Delta에서 조직원들이 이뤄내길 원하는 성과.
그리고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나는 스스로 제한을 걸기를 거부한다. 

한편, 나의 지난 6개월 간 리더십은 강물을 모티브로 발휘되었다. 
각자의 개성과 실존을 존중하면서도, 조직 전체의 방향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가령, 어떤 목표를 두고 전체를 천천히 한 반향으로 밀어 나가지만, 
조직원 각자를 강제로 밀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또한 천천히 흐르는 물처럼 구태여 명확한 목표 설정을 하지 않기도 했다.
표면적으로, 조직원들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가로지를 수도 있게 충분한 생각과 행동의 자유도를 부과하고자 했다.  
각자의 이데아와 조직의 이데아를 정렬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들여도 된다고 보았다. 

한편, 나의 목표나 말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하거나, 
와닿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자주 들었고,
지금은 이상과 현실의 중간 지점을 맞추는 단계에 있다. 
플라톤이 마주해야했던 실패를 나 역시 낮은 충격으로 떠안은 셈이다. 

몇차례 밝혔지만 조직원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나의 의견을 숨기고 인내하는 일을 지난 6개월 간 해왔다.
이는 자발성은 창의성으로 가는 제 1관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타인의 의견이 개입되기 전의, 자신만의 생각을 형성하고
그것을 체득화시키며, 발화를 통해 실천을 하게 하는 것이 나의 의도였다. 
일종의 자발성을 기르기 위한 걸음마를 시킨 셈이다.
또한 지속가능한 Delta 활동을 위해서, 특정 소수의 엔진이 아닌, 
전통적 가치관에 기반한 집단의 자발성이 끌어내지기를 원했다.
마치 옛날 가족들끼리 모여서 분담하여 다 같이 김장을 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반면 요즘 떠오른 나의 리더십에 대한 요구는 명징한 지시의 부재다. 
나에게 리바이어던의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라는 것인데, 
가령, 조직원에게 직접 특정 미션을 부여하기를 원하는 요구가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나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며, 다만 내가 걱정하는 내용을 말해주었다. 
지시는 맹목성을 강화시키며, 그것은 자발성와 창의성을 해하는 일이 될 수 있고,
당초 원했던 다원한 인사이트를 포함하는데 장애 요소가 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나의 열심과 인내의 그늘에서 일부의 나태함을 지적하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그림은 그리기 어렵다고 나에게 얘기해주었다. 

또 다른 혹자는 이상향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치하지 않는 이를 탈락시키고 남은 

마음이 맞는 소수를 만들 수 있다고 말이다. 

즉, 온전한 이상의 실행은 불가능하다는 다른 방향의 이야기였다. 

 

나는 능동적 허무주의를 믿는 편인데, 그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요구다. 

나는 이상과 현실의 중간에서 조율을 해나갈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강물의 리더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하늘위 무지개 위에 배를 띄우고 건너자고 말하는 리더십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