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다시 만드는 게 낫습니다"
이제 막 입사 1년을 넘겼던 때였다.
두 개의 다른 시스템을 통합하자던 프로젝트는 그렇게 리뉴얼 프로젝트라는 더 큰 판으로 둔갑해버렸다.
5살 먹은 'A'웹과 1살도 안된 'B'앱에 통합의 바람이 분 건 아래의 이유였다.
첫쨰는 '통합'이 당시 우리 회사의 일종의 트렌드였어서 피할 수 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팀장님도 실장님도 분리된 'A', 'B'가 직감적으로 사업적으로 불리함을 알고 있었기 떄문이었다.
당시, 나는 첫 번째 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통합'이라는 단 하나를 위해서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서비스가 패션이나 관광지도 아니고...이건 뭔가 아니다 싶었다.
단순히 'A'웹에 메뉴 하나 더 파서, 'B'컨텐츠를 마이그레이션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기왕 돈도 투자하고, 업무도 밀어준다는데, 이참에 바로 잡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는 뭐가 엉망인지도 정의내리기 어려웠음에도
또 뭘 어떻게 해결할지 아이디어와 백그라운드 지식이 일천했음에도
다시 만드는 게, 개선보다 빠르며 필수적이라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당시, (지금도 그렇지만) 이런 나의 무지를 보충해 줄 선배가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을 만날 지, 어떤 공부가 필요할 지 어떤 생각도 없었다.
모르니까 갖는 용기와(돌이켜보면 객기에 가까운 거 같다.) 일종의 소명의식이었을까?
팀장님한테, 내 커리어의 방향을 바꾸게 될 말을 뱉게 된 것이었다.
'말씀하시는 통합이야, 페이퍼 쓰는 시간 빼고, 컨텐츠 포맷 마이그레이션 기간 빼고...
그럼 실제 개발 기간이야 1개월도 안걸립니다. ...
여전히, 'A'웹일 뿐입니다....
단순한 통합이어서는 똑같을 거 같습니다.
차라리 다시 만드는 게 낫습니다.'
앞에 언급한 대로, 통합의 축이었던 'A' 웹은 모든 게 엉망이었다.
(엉망이라는 건 알고 있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모르긴 했다)
우선, 개발 이력부터 엉망이었다.
'A' 웹은 1년 남짓한 기간에 클라우드 아키텍쳐부터, 웹 시스템, 컨텐츠까지 뚝딱뚝딱 개발되었는데,
그마저도 중간에 개발사가 엎어지느라 실제 유의미한 개발 기간은 6개월 남짓의 막개발 상태였다.
히스토리라도 남아있었다면 좀 나았을 텐데, 이렇다 할 기획 문서는 한 장이라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10년대 후반 프로젝트였음에도, 00년대의 오래된 나몰라라 턴키 외주 방식으로 개발된 터라,
회사 내에 참조할 기획 문서가 있을리가 없었고,
초창기 담당자는 오래 전에 팀에서 떠나 해외 발령이 난 상태였다.
더불어, 'A' 웹 시스템의 초기 개발자들 역시 전부 담당 외주사를 떠난 상황이었으니,
내게 남아 있는 건, 아래의 세 개 뿐이었다.
1. 전래동화처럼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랬더라 저랬더라 식의 히스토리
2. 눈에 보이는 'A'웹, 손에 들린 'B'앱
3. 위의 두 개를 바탕으로 어떻게 된 일인지 추측하고 뭘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는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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