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에의 복종이라는 개념은, 사회심리학에서
가장 유명한 실험 중 하나인 아이히만 실험을 거쳐
밀그램에 의해 정의된 개념이다.
아이히만 실험이란, 나치에서 유대인 학살에 앞장섰던 아돌프 아이히만에서
착안하여 구상돈 실험으로, 인간의 선악에 대한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알아보는 실험이다.
예전에 EBS 지식채널에서도 자주 소개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실험이므로
가능한 최소한의 소개만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아이히만 실험은, 전기충격의자에 연기자를 앉혀둔 채 진행한다.
실험자는 연기자를 볼 수만 있는 격리된 장소에서
사전 약속된 규칙에 의해 점진적으로 전압을 높이면서 전기고문을 가하게 된다.
연기자는 전압이 올라갈 수록 점점 고통스러운 연기를 하다가,
특정 전압부터는 아예 죽은 연기를 한다.
결과는 어땠을까?
점점 고통스러운 모습과 심지어 죽은 것처럼 보이는 데도,
실험자들 다수가 최대전압까지 충격을 가한다.
심지어 실험자들의 옆에, 눌러도 괜찮다고 부추기는 사람이 있는 경우
그 비율은 100%에 가까워진다.
인간의 도덕감이라는 게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너무 절망스러운 결과이지만,
반대로 작은 희망의 결과도 있다.
밀그램은, 타인의 의견이 인간의 결정에 영향을 끼침을 알아낸 이후 한 번의 실험을 더 진행한다.
나머지 환경이나 조건은 똑같이 한 채로,
실험자의 옆에 부추기는 사람과 말리는 사람을 동시에 투입하는 것이다.
결과는,
최대 전압까지 인가하는 사람의 비율이 0%로 떨어진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시사점은 인간의 윤리적 결정은 이성적인 판단하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험문제 풀 듯이, 인간은 자신의 행동의 선악 여부를 판가르할 능력이 없다.
조건과 환경에 따라, 인간이 내리는 정답은 가변한다.
그 원인이 인지부조화던, 권위에 복종이던, 리바이어던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이던
어찌되었던 인간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 영역의
무언가가 인간의 이성과 윤리관을 마비시킨다.
인간은 주체적으로 선택하기보다,
정해진 선택을 고르는 것을 더 편리하게 여긴다.
즉, 주체적 존재가 아닌 수동적 존재에 가깝다.
행복은 나누면 두 배,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라는 말처럼,
배덕감이나 죄책감은 나누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이는 인지부조화의 작동 원리와 비슷하다.
책임을 전가할 사람 또는 시스템이 있다면,
인간은 어려운 도덕 문제를 풀면서 정신적인 노동과 고통을 감내하기 보다,
무비판적으로 기계적인 선택지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선함이란 어쩌면
복잡하고 어려움을 회피하는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악한 행동 이후의 뒷처리란 채집과 수렵생활 시절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되었다.
어제 다투었던 직장동료를 내일도 그 다음날도 봐야 하고,
결혼 등의 사회적 계약관계나, 보편적 도덕이라는 암묵적 사회합의 안에서
모든 분란과 분쟁은 갖가지 부수적인 이벤트와 스트레스를 야기시킨다.
원초적이고 가장 단순한 해결 방법인 폭력조차 말이다.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지각을 갖고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착한 사람이더라도
실은 착한 것이 아니라 악함을 선택하지 못해서 착함을 당하는 것이다.
유명 수학 강사 한석원이 자신의 수험생 시절 아래의 문구를 되뇌었다고 한다.
'오늘 하루 나는 얼마나 나의 주인이었는가?'
주체적으로 선함과 악함을 택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과연 자신의 주인이겠는가?
주인이 아닌 사람이 과연 선한 사람일 수 있겠는가?
나는 조직의 리더로써, 권위에의 복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는 조직 내에 커뮤니케이션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누군가가 특정 의견을 제시하면, 그 의견에 매몰되어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사실 DELTA에서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그것이다.
가급적, 나의 의견을 먼저 제시하지 않으려고 늘 노력중이다.
그렇게 되면, 나의 의견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조직원의 생각이 갇힐 수 있기 때문에, 내심의사가 반영된 진짜 목소리를 듣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반대 의견을 수월하게 개진할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뜻 깊은 일이며, 매우 귀중한 일이다.
반대 의견은, 모든 조직원에게 사고의 지평선을 새로 열어준다.
이후 언급될 '악마의 대변인'처럼
필요하다면 억지에 가까울 정도로 반대 의견을 구조적으로 생성할 가치가 있다.
꼭 사람의 발화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더 큰 위협은 이미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 문화, 습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자연물과 같은 형태의 권위에게 복종하고 있다.
초년생이라면 누구나 이미 정해진 조직 체계와 업무 프로세스 등
모든 과거로부터의 상속물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작업을 거친다.
모든 조직원이 시작부터 복종당하는 것이며,
업력이 오래된 회사일 수록 자정작용과 혁신역량이 퇴색될 수 밖에 없다
이미 완숙한 대기업에서 프로세스의 혁신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 반증이다.
대부분의 혁신은 새로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그룹이나, 빅테크 회사에 그친다.
이들은 상속물이 없거나, 혹은 조직규모를 마이크로팀으로 나누어 상속물을 최소화시킨다.
또, 인적 자원의 빠른 순환을 통해, 특히 문화적인 상속물이 뿌리내릴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델타는 이런 혁신을 지향하는 비교적 젊은 연령대의 그룹이다.
모든 상속물에 대해서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고,
새로이 설계하고자 하는 태도를 조직원들에게 배양해야 한다.
짐 켈러는 매 3년마다 새로운 반도체 설계를 아예 처음부터 시도를 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정해진 주기로, 기존 관습을 처음부터 점검하는 일을 해야한다.
동시에, 이를 가속화시키고 변혁에 대한 장벽을 낮추기 위해
필요한 상속물 또한 마이크로 형태로 저장해야한다.
상속물이 프로세스라면, 프로세스를 기능 단위로 분해해야 한다.
상속물이 템플릿이라면, 변형 자유도가 높은 형태의 단일 템플릿만을 유지한다.
책임을 전가할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시스템이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인간이 능동적인 이성적 결정을 포기한다는 점 또한 조직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개인주의가 심화되며, 회사의 일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어티튜드가 자리잡고 있다.
개인이 회사 내에서 자아실현을 포기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며,
개인은 더 이상 회사일에 대해 앙가주망하지 않게 된다.
더 나아가, '회사 일인데 알바인가'라는 식으로 무책임해진다.
10000개를 팔 수 있는 일이 1000개 판매에 그친다.
즉, 회사는, 회사이기 때문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는 게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조직원 숫자가 많아짐은,
개인 하나쯤 게으르게 일하고, 비성실하게 일을 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썪은 사과 상자 이론에 따라, 조직 내 조직원의 숫자가 많을 수록
이런 선택의 전파 속도가 빨라진다.
이를 막기 위해서, 조직원 숫자를 줄여야 한다.
동시에, 타인의 실패도 나의 실패로 느낄 수 있도록
최소 단위 조직 내의 유대감과 휴먼 네트워크를 강화해야한다.
델타는 어느정도 범위 내에서 전체 조직원 숫자를 통제해야한다.
좋은 영향력만 나눌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 협소한 범위를 유지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지금은 강제로 맞추고 있지만,
최근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고자 하는 목소리나 불만,
그리고 내부에서 외부를 받자고 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협의를 통해, 정돈된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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