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을 배울때 만나게 되는 내시 균형은,
이 내용을 정리한 존 내시의 이름을 딴 것이다.
존 내시는 게임이론의 기틀을 닦은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본업은 수학자로 미분기하학과 편미분방정식 연구에 공을 남겼다고 하며,
리만 가설에 대해 연구헀다고 한다.
내시 균형이 설명하는 게임의 상황은, 서로 비협조적인 상황을 가정한다.
이 비협조적인 게임 이론 상황 설명하는 것이 죄수의 딜레마로,
서로 격리된 용의자들이, 상대방의 죄를 먼저 진술하면
본인의 형량은 감형을 받고, 상대방의 형량은 괘씸죄가 적용되어 증가한다.
단, 둘 다 진술할 경우, 혼자 진술했을 때보다 높지만, 괘씸죄가 적용된 형량보다 낮은 형량을 받는다.
둘 다 침묵할 경우, 중간의 형량을 받게 된다.
이 경우, 내가 범죄자라면 진술을 해야 할까? 침묵해야 할까?
합리적인 선택은 진술이다.
상대방이 진술을 안한다고 가정한다면, 진술을 해서 감형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상대방이 진술은 한다고 가정한다면, 진술하여 괘씸죄보다 낮은 형량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따라서, 최선의 선택은 둘 다 침묵하는 것임에도,
내시균형은 둘 다 진술하는 쪽에서 성립하게 된다.
위에 내용은, 개인적으로는 TESAT 공부할 때 알아두었던 내용이었는데,
책에서 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주어서 좋았다.
바로, 반복적으로 실행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단 한번의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라면, 상대방을 배신하는 것이 이득임을 위에서 봤다.
하지만, 이 게임이 계속 반복될 때도, 배신이 이득일 수 있을까?
왠지 경험적인 혹은 동물적인 느낌으로, 계속 반복해서 배신함이 이득일 것 같진 않다.
어떻게 해야, 장기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대회를 열어서, 여러 알고리즘끼리 경쟁을 펼쳤는데
생각보다 최고의 성능을 낸 알고리즘은 매우 단순했다.
바로, 상대가 전 판에 냈던 패를 미러링해서 내는 것이다.
상대가 배신의 카드를 내면, 나도 다음 판에는 따라서 배신을
상대가 협조의 카드를 내면, 나도 다음 판에는 따라서 협조를 하는식인 것이다.
대인관계도 마찬가지일 수 있을까?
소위 미러링 전술이라는 것이 유효한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미러링이라는 워딩이 사실 서로를 헐뜯고 공격하는데에
가장 많이 사용되기에 일단 개인적으로 긍정적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전제인
'게임은 계속 반복된다'라는 아이디어가
서로 싸우고 경쟁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이 싸움이 계속될 것이다'가 아니라 '이 싸움은 내가 이길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이 전략은, 내가 게임에서 매우 수동적 존재가 된다는 데에 있다.
특히, 서로 배신을 계속 누르다가 상방 협조로 전환하는 순간에 있어서,
나는 자원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저 기다릴 뿐이다.
대인관계 또는 실전에서 통하지 않는 이유는
상방 패널티가 일정히 주어지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서로 배신의 카드를 택하고 외면하는 단계에서,
'에이 더러워서 피하고 말지. 내가 손해볼게 있나'하는 사고방식을 가지는 게 흔하다.
다소 거친 생각이긴 하지만, 게임플레이어로써 상방 협조를 끌어내려면
상대방에게 패널티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주어서
상대방의 리액션을 끌어내는 것도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트럼프 정부 시절, 미중 관세장벽을 통한 무역 전쟁이나,
미국-러시아-사우디 3자 석유가격 갈등, 대북 제재 등이 비슷한 길이 아닐까 싶다.
원하는 대로는 전부 되진 않았지만, 어쨋든 재임기간 동안 수번씩
협상 테이블에 의사결정자들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조직의 리더로써 어떻게 내시균형을 적용할 것인가?
조직원 사이 갈등이 생기는 때에, 해결하는 전략으로써 고려할만 하다.
대개 갈등 해결 방법 중 하나는, 한 쪽씩 개인 면담을 하여
차례차례 온건한 방법으로 봉합하려는 시도가 가장 흔한 것 같다.
이 방법이 과연 최적인 걸까?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로, 개인 면담에는 순서가 생기고
전후 순서에 따른 면담 내용과 방향이 다르게 설정될 수 밖에 없다.
한 명씩 해결하려는 방식이, 한 명을 마녀사냥하는 그림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갈등을 겪는 사람들끼리의 유불리가 필연적으로 생성될 수 밖에 없으며
각자가 느끼는 내시균형이 다른 지점에서 생길 가능성이 생긴다.
어쩌면, 이 방식보다, 더 강압적이며 공격적인 방법이 맞지 않을까?
가령,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애들끼리 싸웠을때,
선생님이 두 애들을 불러놓고 서로 사과해를 강요하는 상황처럼 말이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1. 개인면담을 생략하고, 갈등 당사자들을 불러모아 마주보게 한다
2. 갈등이 해결되기 전까지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계속 마주볼 수 밖에 없게 한다
3. 리더는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죄수의 딜레마 게임 자체를 유지시킨다
4. 서로 사과하고 협조할 때까지 계속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유지시킨다.
애들싸움이 유치하다고 하는 것은, 봉합이 빠르다는 이유도 있는데,
사실 애들싸움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애들싸움을 화해하는 과정이 적절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세련된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애들싸움 중재시키는 방법'만큼 효과적인 게 없긴 한 거 같다.
이는 나쁜 조직문화에도 적용해봄직하다.
각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안 함'과 '열심히 함'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할 때,
각 선택해 대한 보상이 설정이 잘못되어있다면,
'열심히 안 함'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열심히 함'을 선택하는 사람만 피해와 손해를 보고
오히려 '열심히 안함'을 선택하는 사람이 이득을 가져가는 구조가 일어나므로,
장기적인 조직 성장과 좋은 조직 문화 안착이 일어날 수 없게 된다.
이를 파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열심히 안 함'을 선택하는 사람을 자르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대기업들은, 사회의 눈칫밥 속에 이 선택지가 붕괴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령, 나의 생각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열심히 안하는 사람'에게
패널티를 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 R&R이라는 이름으로 각 실무자들끼리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데,
R&R을 최대한 부수면 자연스러운 갈등을 형성시킬 수 있다.
반복적인 게임 참여를 강제하여, '열심히 함'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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