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인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제시한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개념은
물건과 이름이 언어마다 매칭하는 논리가 다름을 지적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는 '나비'와 '나방'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프랑스어에는 이를 구분하는 단어가 없다.
프랑스어에서는 이 둘을 동시에 지칭하는 '빠삐용(papillon)'이라는 단어만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나비와 나방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나비와 나방을 함께 통칭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비와 나방이라는 객체는 각 언어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지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소쉬르는 개념을 나타내는 언어를 '시니피앙(signifiant)'이라고 정의하고,
언어에 의해 표시되는 개념을 '시니피에(signifié)'라고 정의하였다.
즉, 한국어는 두 개의 시니피앙으로 두 개의 시니피에를 나타내지만,
프랑스어는 두 개의 시니피에를 한 개의 시니피앙으로 나타낸다.
우치다 다쓰루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개념은 그것이 정해지고 내용을 포함하여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속에서 다른 말과의 관계에 의해 결여된 관념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어떤 개념의 특성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개념으로 정의될 수 없고, 다른 개념이 아님으로써 정의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개념을 고정시킨다.
둘째,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언어의 개념에 고착되지 않은 채 사고하는 시도를 할 수 있다.
셋째, 많은 언어를 알수록 나의 세계가 넓어진다.
왜냐하면, 생각은 단어로써 정의되고, 단어는 사실 개념으로써 정의되기 때문이다.
이런 언어에 대한 연구는 이데아가 없다는 것의 증명이기도 하다.
개념의 정의에 대한 이데아도 없으며,
우리는 그 개념조차 끊임없이 재정의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도 있다.
최근에, 장원영의 SNS 메시지 내용을 빗대어 '원영적 사고'라는 밈이 있었는데,
이는 긍정적 사고를 넘어선 초긍정적 사고를 칭하는 표현이다.
긍정적 사고 이상의 무언가가 있구나 하는 식으로
이처럼 기존의 관념의 천장을 지속적으로 깨뜨릴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조직이라는 개념도 다 바뀔 수 있다.
조직이라면 마땅히 이러해야만 한다는 고정된 것은 없는 것이며
전부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인간 스스로 또는 조직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 이는 세계에 대해 앙가주망해질 이유를 제시한다고 볼 수도 있다.
아무리 전문화된 조직이라 할 지라도 조직의 내재화되니 결론이 완전한 정답일 수 없기 때문에,
그 자체가 조직이, 또 개인이 세계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된다.
당연히, 탑다운으로 떨어지는 모든 지시와 체계 역시 정답이라 볼 수 없다.
고작, 소수의 임원이 알고 있는 개념과 경험이 전부일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직 전반적으로, 바텀업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재편해야 한다.
C레벨에 가까울 수록, 실무와 멀어진 기간이 길었음을 스스로 상기하며
의사결정권자 개인의 사회 경험 자산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현재 비즈니스 세계의 맥락을 짚으며 판단하는 것이 옳을 지 모른다.
조직과 직원은 서로 경쟁하는 공존관계로 존재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는 게 내 오랜 생각이다.
오늘날 유독 발전이 더딘 회사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C레벨이 국소적인 퍼스펙티브를 기반으로 국소적 역할만을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오늘날 대기업에서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는데,
다수의 C레벨끼리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다는 게 표면적으로도 드러나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이런 상호작용의 부재는 회사가 전략적 목표를 고려한 실행을 펼칠 때 큰 장벽이 된다.
대학교 2학년 때, 통계학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시험에서 A맞는 거,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다 잊는다.
지식이 필요한 순간 일단 아는 척하고 와서 나중에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이 학부의 목표여야한다"
이 말씀은 지금 생각해보면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와 맥이 같다.
C레벨은 이 정도의 지식 수준을 항시 유지해야한다.
가령, MS의 CEO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는 인터뷰를 통해
매년 읽지 못할 만큼의 책을 사고, 듣지 못할 만큼의 세미나를 신청한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리더로서 어떻게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을 적용할 것인가?
늘상 내가 상기하던 점이었다.
내가 현재 다방면에서 꾸준히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마찬가지다.
나의 잠재되어있는 더 넓힐 수 있는 역량이 내가 붙들고 있는 개념 안에 자그마하게 갇힌다.
업무적으로 돌아보자면, 내가 아는 만큼 커뮤니케이션하고,
나의 영역을 넓히고, 상대방을 포용할 수 있는 그늘이 커짐을 지난 3년 넘게 느껴왔음이다.
나의 늘 리더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직원들의 시니피에를 포용할 수 없다면, 그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같은 시니피앙을 떠올릴 수 없다.
업무적인 것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실무와 상황을 제대로 상상할 수 없다면 이해를 기반으로 한 공감을 할 수 없기에
심한 경우, 조직 내 갈등을 해결할 골든타임을 리더의 무지로 놓칠지도 모를 일이다.
공부는 개념을 알게 한다면,
개념을 아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영역을 넓히게 한다.
커뮤니케이션 영역이 넓은 리더는 보다 적합한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업무 간 어디서부터 변화 과정을 시작할지 맥을 짚을 수 있다.
조직원과의 공감을 기반으로 한 심리적인 권력 거리를 좁힐 수 있으며, 따라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
카리스마 외에 본인의 지식을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의 합법성을 수립할 수 있고,
이는 리더십의 영향력을 공고히 할 것이다.
단순히 리더가 많이 아는 것만으로도 회사의 체질을 바꿀 가능성이 생긴다.
이게 내가 되고 싶은 리더의 자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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