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랩을 하겠다고 대뜸 선언하고서는
1월에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은근한 바로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실장님의 표현에 못 이겨 12월에 시작하는 걸로 하였다.
실장님 입장에서는 임금피크제도 걸려있고
뭐 회사에서 진행하는 조직문화 관련 활동도 있다보니
내심 마지막 책임감이 둘러싼 기대감이 있었을 터.
그럼에도 끝까지 시작을 뒤로 미룬 건
당시에 웹 런칭을 앞두고 화면 점검 그리고
신차 관련 업무가 물밀듯이 쏟아졌기에
정말로 바빠서 바로 시작할 엄두가 안났기 때문이 첫번째였다.
사실 이건 에라 모르겠다 시작부터 해두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야근이야 좀 했겠지만
충분히 트레이드오프할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
뭐 애초에, 내가 선택해서 하는 야근에 대해서 괘념치도 않는 타입이기도 하거니와.
그렇다.
진짜 또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어떻게 사람을 모으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스터디 하듯이 사람을 모으면 안된다는 직감적인 결론 때문에,
바로 양떼목장의 양떼 모으듯이 그룹을 만들 수는 없었다.
나의 대학생활은 수퍼 장기 스터디와 같았다.
나의 전공 특성 상 기계와 전자를 둘 다 했어야 했는데
그 때문에 남들의 1년 커리큘럼이
내 전공의 한학기 커리큘럼과 맞먹었다.
혼자 공부해서는 과제 제출조차 버거웠으므로
매일같이 나와 내 동기들은 약속하지 않아도
함께 모여서 공부하고 서로서로 모르는거 알려주며 밀고 당기는 게 일상이었다.
우리는 뒤처짐이라는 맹견에 항상 쫓기고 있었다.
혼자선 싸울 수 없었고 그래서 항상 팀이었다.
그리고 항상 열심이었다.
2학년때 참여했던 삼성전자 교육프로그램도 그러했다.
밤새라고 아무도 부추기지 않았고
오히려 삼성전자는 건물 전체 소등을 해버렸지만
우리 팀은 노트북 불빛에 의존하며 발표를 준비했었다
목표가 나름 있었고
남보다 잘하고 싶다의 남이라는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결과라는 말이 성립했으니까,
우리에게 폐를 끼치는 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각자가 스스로 불러일으킨 동기와
우리라는 공동체가 등 떠미는 의무감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야 할 조직에는 이런 것들이
태초부터 결여되있었다.
물론 그냥해도 괜찮았을지 모를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굉장한 도박수라는 걸
흐지부지한 몇 번의 취업스터디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포석을 둬야 한다가 내 결론이었다.
그것도 꽤 전투적인 포석으로 반드시 상대방의 맞대응을 이끌어내야 했다.
AI시대 바둑에는 전투를 기피하는 모양인데,
나는 억지로 팻감을 만들기로 했다.
최악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거였고 물론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내기바둑을 열고서는
상상 가능한 최악으로 달았들 때,
마지막으로 걸 판돈으로 나의 퇴사까지 칩으로 환전해 두기로 마음 먹었다.
어정쩡한 사회인 넘버xx으로 살 건지 vs 도전할 건지를
결정하는 승부를 보고자하는 배수진이었는지는 나조차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3년간 벌어놓은 레퓨테이션을 확실하게 써주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당시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인생의 대국은 계속 이어지는 법이고, 내 인생에서 수 번의 대국이 남았을 테니까.
여기서 잘 이긴다면,
나는 앞으로의 대국에서 항상 몇 점씩 깔고 바둑을 둘 수 있을 것이었고,
여기서 잘 지기만 해도,
나는 남들이 둬 본 적이 없는 행마를 연구한 셈이 되고
좀만 더 운이 좋다면 나만의 정석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도전정신과 기대감이 있었다.
사실 뭐 그 정도로 거창하며 대책없는 수상전을 펼치는 건 아니었다.
실장님께 11월에 대뜸 제안하기에 3개월전부터
나는 매니저들 대상으로 수읽기를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1대1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생각과 목표를 갖고 있는지
해볼까 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왔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이 없었던 것은
수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고
(실장님의 은근한 압박 외에도) 시간을 언제던 계속 끌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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